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랭크 토머스 (문단 편집) === 연도별 정리 === 다만 토머스도 한 때 통산 성적을 기준으로 한 평가에 불이익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그 시대의 가장 큰 피해자인 마냥 과장되어 묘사한 것은 당시의 상황에 미루어 본다면 많은 오류가 있다. 적어도 토머스 본인부터가 1990년대부터 한결같은 주특기인 언론에 징징거리기 신공으로 떠드는 것처럼, 당시 그가 약물을 복용한 선수들 때문에 당대에도 크게 불이익을 겪고 푸대접 받은 것으로 단정하는 것은 비약이다. 단, 야구 전문가들은 토머스를 대선수로 바라봤지만 기록을 찾아보거나 누가 더 낫냐를 피상적인 접근으로만 바라본 팬들은 토머스를 정상급의 선수 정도로 보지는 않았다. 1. 1997년 토머스는 35홈런 125타점과 함께 타율-출루율-OPS에서 리그 1위를 기록하고, 장타율은 리그 2위를 기록했는데, 팀 동료인 [[알버트 벨]]의 최고 연봉에 혼자 삐져서 시즌 내내 툴툴거리는 바람에 팀을 골치 아프게 했으며, 벨 역시 이 시즌에는 주춤해버렸다. 결국 팀은 시즌 종류 후 7년 $64.4M이라는 당시 최고 규모의 연장 계약을 체결해 토머스에게 제대로 대접해줬으며, 언론에서도 최고 계약으로 대서특필하면서 크게 주목을 받았다. 허나 역시 약물과는 무관한 청정타자인 [[켄 그리피 주니어]] 역시 이 해 무려 56홈런 147타점을 기록하면서, [[골드 글러브]]까지 수상해 MVP에 올랐다. 토머스는 그런 그리피보다 한참 더 높은 연봉을 받았다. 물론 토머스가 돈값을 못한 것이 아니라, 그리피가 적게 받는 거긴 했다. 2. 1998년 스프링캠프 당시 토머스는 무려 135kg가 넘는 [[파오후]]가 돼서 등장했고, 시즌 내내 위력이 확 떨어진 모습을 보인 끝에 타율이 .267로 떨어진데다가 29홈런 109타점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반면에 벨은 48홈런 152타점을 올렸다. 그러고도 MVP는 약물 복용자인 [[후안 곤잘레스]]에게 돌아갔다. 이쯤 되면 진짜 약물의 피해자는 벨이라고 볼 수 있으며, 내셔널 리그에서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가 홈런 레이스를 벌인 덕분에 아메리칸 리그의 모든 타자들이 묻히는 비운을 맛보았다. 오히려 1998년 약물때문에 불이익을 본 진짜 피해자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벨과, 2년 연속으로 56홈런 146타점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하고도 별 것 아닌 취급을 당한 그리피였다. 3. 1999년 토머스는 [[지명타자]]로만 출장했으면서도 15홈런 77타점이라는 너무 초라한 성적을 기록했는데, 이건 약물이고 뭐고 따질 성적이 아니다. 최악의 [[투고타저]] 시기이던 1960-1970년대에도 이 성적이면 지명타자로서는 너무 초라한 성적이다. 이 해에도 그리피는 또 다시 48홈런을 기록하면서 3년 연속으로 아메리칸 리그 홈런왕에 오르고 골드 글러브까지 가져갔지만, 맥과이어와 소사가 또 다시 홈런 레이스를 벌이는 바람에 또 다시 묻히는 비운을 맛보았다. 4. 2000년 토머스는 재기에 성공해서 자신의 홈런 기록을 경신하는 등 43홈런 143타점을 기록하며, MVP 투표 2위에 오르고 아메리칸 리그 올해의 재기 선수상을 수상하는 등 팬들과 언론의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MVP는 43홈런 137타점을 기록하며 비슷한 성적을 거둔 [[제이슨 지암비]]에게 돌아갔는데, 비슷한 성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지암비의 공헌도를 더 높이 쳐준 것이었다. 사실상 토머스가 정상적인 상태였음에도 약물 복용자에게 불이익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 때는 '''이 때가 유일하다.''' 그리피는 이 해 신시내티 레즈로 이적한 이후 40홈런 118타점을 기록하고도, 다섯 명이나 되는 약물 복용자들에게 밀려 홈런 9위에 그치고 평범한(?) 성적으로 실망스럽다는 쓴 소리까지 들었다. MVP는 놓쳤어도 팬과 언론의 극찬을 받은 토머스와, 약물 선수들에게 밀려 저 성적으로도 욕만 잔뜩 먹은 그리피 중 대체 누가 더 큰 피해자였나? 5. 2001년 토머스는 자신이 징징거려서 받아낸 장기 계약에 불만을 품고 더 많은 돈을 달라는 황당한 고집으로 팀 분위기를 망친 데다가, 팀을 무단으로 이탈하는 최악의 판단으로 팬들의 지지와 팀의 신뢰, 동료들의 존중을 모두 잃었다. 그렇게 많은 것을 잃어가면서 억지로 연봉을 올려 놓고는 정작 시즌이 시작되자마자 부상을 당해 아웃되었으며, 이쯤부터 토머스는 팀의 골칫덩이로 전락하고 [[폴 코너코]]가 새롭게 팀의 리더로 자리잡았다. 6. 2002년은 타율 .252에 28홈런 92타점을, 2003년은 타율 .267에 40홈런 105타점을 기록했는데 펀치력은 있었지만 가장 큰 장점이었던 타격의 정확도가 크게 하락했다. 게다가 2004-2005년은 부상과 부진한 성적에도 정신 못 차리고 계속 팀에 대한 불평불만을 언론에 떠들어대서, 동료들도 완전히 등을 돌리고, 팀에서 처리 1순위로 낙인찍혔다. 심지어 부상으로 월드 시리즈 엔트리에도 완전히 제외되어, 팀이 88년 만에 우승하는 순간에도 없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 이는 약물에 의한 저평가와는 전혀 거리가 먼 자업자득으로 인한 [[인과응보]]였다. 7. 결국 화이트삭스에서 쫓겨나고 받아주는 곳이 없자, $0.5M이라는 최저 연봉에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계약한 뒤 39홈런 114타점으로 다시 한 번 아메리칸 리그 올해의 재기 선수상을 수상했다. 이 과정에서 언론은 토머스의 재기에 큰 박수를 보내고 호의적으로 대했으며, 팬들도 너무 비참하게 쫓겨난 토머스에게 동정심을 가지고 크게 격려하며 박수를 보내주었다. 또한 2005년 열린 [[스테로이드 시대#s-2.2|의회 청문회]]로 인해 토머스의 재기에 더욱 호의적인 반응을 보여주었다. 이 때부터 약물로 인한 불이익은 커녕, 청정 타자의 상징으로 낙점되어 그동안 묻혀있던 기록들이 꺼내지기 시작했고 비로소 제대로 된 평가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위에 거론한 내용들처럼 토머스가 전성기를 누릴 당시에는 해당 시즌에 약물 복용자들로 인해 상대적으로 받은 불이익은 크게 없다고 봐도 좋으며, 오히려 그리피, 토미와 벨이 토머스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고 큰 타격을 받은 경우라고 볼 수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 토머스는 이기적이고 철부지같은 태도가 크게 드러나면서 평가가 바닥까지 떨어졌으며, 그에 더해 비율 스탯은 최고였지만 누적 스탯은 약물을 복용한 스타들의 성적보다 상대적으로 두드러지지 않아 저평가 받아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재기에 성공한 2006년 이후 스타들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그런 시각이 빠르게 바뀌었으며, 토머스 본인이 한결같은 언론에 징징거리기 신공을 펼치면서 마치 토머스만 푸대접을 받아온 것처럼 과장된 흐름이 만들어진 것이다.[* 사실상 [[짐 토미]]가 약물에 의해 가장 큰 피해자를 본 선수라고 볼 수 있는데, 전성기를 맞이한 1996년부터 [[알버트 벨]]과 약물 복용자인 [[매니 라미레즈]]라는 완성도 높은 슬러거들과 같은 팀이었기에 상대적으로 그늘에 맍이 가려진데다가, 토미의 전성기는 사실상 [[스테로이드 시대]]를 관통하는 10년이었다. 당시 토미는 9년 연속 30홈런을 기록했지만, 1990년대 말의 30홈런은 웬만한 팀의 중심 타자들이 기록하는 수준에 불과했으며, 2001년부터는 4년 연속 40홈런을 기록했고, 2003년에는 무려 52홈런을 기록했지만 역시 약물을 복용한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57홈런에 밀렸다. 토미는 2003년 리그를 옮겨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이적하고 나서야 47홈런으로 생애 최초의 홈런왕에 오르고서 겨우 최정상급 슬러거로 인정을 받았다. 토미는 꾸준하게 기량을 유지하면서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2005년을 제외하면, 38세인 2008년까지 34홈런을 기록하는 등 1996년-2008년까지 모두 30홈런을 기록하고 1004년-2010년까지 20홈런 이상을 기록한 최고의 슬러거였지만, 전성기 내내 약물 복용자들의 맹활약에 묻혀 직접적인 저평가의 대상이 된 스테로이드 시대의 가장 큰 피해자 중 한 명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